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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츙(·8·)츙 죽인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어슴푸레한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기대를 느끼는 시간.
학교에서 나는 샌드백이다. 뚱뚱해한데다 굼뜨고 어두운 나는 매일 물건을 빼앗기면서 폭행을 당하고 있다.
집에서는 무시당할 뿐이다. 부모의 애정은 모두 동생에게 쏠리고 나에게는 물건도 마음도 동생에게 주고 남은 것들만 주어진다..
세계의 모든 것이 나의 적이며 벽이다.
적은 막강하고 벽은 튼튼하다. 내가 뭘 하든 끄떡없다.
무엇을 해도 잘 안 되는 나는 점점 아무것도 할 마음이 안 생겨 되기 시작했다.
분노와 무력감, 그것들이 나의 전부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항상 이 공원에 들른다.
볼품없는 잡초가 무성한 공원에 들르는 인간은 극히 드물어서 공원은 항상 정적에 휩싸이고 있었다.
세계의 전부가 적인 것은 전술한 대로이지만, 특히 인간은 특히 악질이다. 주체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제든지 나 혼자 있게 될 이 공원은 적진 속에 조용히 선 오아시스인 것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상공을 솔개가 유유히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이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다……
그 때 불청객이 왔다. 츙(·8·)츙이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산책하는 중인가, 멍청한 벼슬을 풀숲 밖으로 드러나게 하고는 태평하게 울음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다가온다.
바닥을 기어다니다 내가 허공으로 생각을 떨치고 있는 도중에 나타난, 날지도 않고 평생을 땅에 설설 기면서 지낸다는 츙(·8·)츙. 꼴사나운 뚱보 새.
그런 비아냥거림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나는 세계에, 세상의 원리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너는 날지 못하니까 너는 소리개가 될 수 없어, 너는 츙(·8·)츙이야, 너무 뚱뚱해서 땅에다 몸을 질질 끌고 다니지."
하늘의 뜻이 나의 머리 속에서 반응한다. 그렇구나, 나는 츙(·8·)츙인가...
히로바츙!표정이 밝네츙!
풀숲에 있는 건 지겨워칭.
오야츙!오야츙!
마츠츙!이제 조금만 양달로 가자츙!
츙(·8·)츙의 대열이 잡초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동물에겐 별로 아무런 관심도 없는 나지만,"츙(·8·)츙은 자신의 메타포다"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나는 대열을 응시했다.
배를 땅에 비벼댄다. 꼴사나운 모습은 확실히 나와 비슷하다.
하지만……나랑 같은 종류의 추한 짐승 주제에 왜 너흰 행복한 거냐?
너무 좋아서 넋이 나가있는 츙(·8·)츙 일가의 표정, 퓨와퓨와하는 지저귐이 나에겐 " 비꼬는" 것처럼 비쳤다.
또, 고독과 정적을 요구하며 이 공원을 찾는 나의 앞에서 이 무리들은 일부러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나와 동류인 주제에 나에게 시비를 거는 건가? 나의 성역을 웃으면서 유린하는 건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의 흥분. 분노. 온몸이 떨렸다.
보복이다. 죽인다. 츙(·8·)츙 죽인다.
오야츙! 칭! 칭!마카용칭!
나는 특히 기분이 좋아서 지저귀고 있는 새끼(·8·)츙의 뒤에서 정수리에 오른발을 내리눌렀다.
콱 빠직빠직빠직
쀼옷
짧고 탁한 목소리가 주위에 울렸다.
해냈다. 죽였다. 목숨을 앗아갔다. 나도 할 수 있었다.
항상 몰리던 내가 반격했다. 승리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승리의 맛은 단연 달았고 다시 또 누군가를 살육하게 만든다.
죽이고 싶어. 더 죽이고 싶어.
히나(·8·)츙의 절창을 듣고 츙(·8·)츙과 피요(·8·)츙이 내 쪽을 향했다.
눈을 뜨고 온몸이 경직된 피요(·8·)츙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오른손을 펴고 몰래 잡는다.
피요(·8·)츙은 어머니를 부른다.
마-피요!!무서피요!무서피요!
피요츙!!지금 구해줄게츙!!피요츙을 놔츙!
츙(·8·)츙은 딸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나를 쪼기 시작한다.
피요(·8·)츙아, 너의 울음 소리 하나로 어머니가 돌아보게 되는 거냐?
가족의 사랑을 잃은 지 오래던 나. 그런 나를 마지막까지 겨냥하여야 하는거냐.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죽인다.
나는 혼신의 악력을 담아 피요(·8·)츙을 깔아뭉개고 땅에 내동댕이쳤다.
삐이이이이!
뿌직
새된 절명에 이어 찌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츙(·8·)츙은 나를 쪼는 것을 그만두고 피요(·8·)츙이었던 고깃덩어리로 뛰어가며 몇번이나 이름을 부른 후에……나를 공포의 눈으로 응시한다.
처음 느끼는 "공포".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츙(·8·)츙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설설 기고 있었다.
나는 왼손으로 츙(·8·)츙을 잡고, 지체 없이에 하복부에 오른주먹을 박는다.
츙...츙...츙...
아픔을 피하기 위해 둥글게 살찐 몸뚱아리, 괴로워 찡그린 얼굴, 그리고 "왜 내가 괴롭힘당하는 거지츙"라고 말하는, 불만을 띤 눈동자.
히나(·8·)츙과 피요(·8·)츙에게 없던 두꺼운 지방층의 촉감. 퉁퉁하게 살찐 고깃덩어리.
내가 있다. 약한 내가 있다. 학교에서 내가 있다……
그럼 나 자신, 작은 나를 때리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 강한 나. 새로운 나.
이 츙(·8·)츙 ― ― 약한 나 ― ―을 죽이면 나의 기념적 승리가 세계에 각인된다.
누가 봐도 나는 "츙(·8·)츙을 죽인 나" " 약한 자신을 죽인 나", 즉" 새로운 나"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
죽인다. 죽인다. 정말 죽인다.
나는 주먹을 풀고 츙(·8·)츙의 볏을 잡아 제쳤다.
치치츄우웅!
절규가 메아리 친다.
장식을 쥐어뜯으니 더더욱 나를 닮아가는 츙(·8·)츙을 땅에 처박고 억누르고 얼굴을 땅에 비벼댄다.
츄우츄츄우웅...
부리가 땅에 스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목이 저음을 울린다.
무의미하게 파닥거리는 날개와 다리를 빼낸다. 지방과 배설물로 부풀어 오른 아랫배를 짓밟는다.
가까이 있던 돌로 뒷머리를 찍는다. 떨어져 있던 녹슨 못을 배설구멍에 깊숙히 넣는다.
나는 모든 수단을 다하여 츙(·8·)츙을 죽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 질 무렵 츙(·8·)츙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츙(·8·)츙을 죽이고 있다.
츙(·8·)츙을 죽일 때, 약한 내가 새로운 나로 탈피한다.
이 세상의 츙(·8·)츙을 죽였을 때, 약한 나도 완전히 사멸하고 나는 심지에서 강한 나로 거듭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