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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을 해볼까.
내일은 오토노키지카 초등학교 운동회.
나는 운영담당교사의 책무 -운동장 정비-에 힘쓰고 있었다.
톰보우(역주:일본의 문구류 전문 회사 이름)를 써서 운동장을 고르고 흰 선을 긋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학생들의 안전을 위하여 세심하고 정중하게 작업해야 한다.
좀처럼 힘든 작업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조금씩 운동장이 좋아지는 것에는 대단한 성취감을 느낀다.
대충 작업을 마치고 창고에 용구를 정리하고 있는데 운동장 구석에 회색의 침입자가 보였다.
근처 공터에 사는 츙(·8·)츙 가족이다.
간식 후의 산책이라도 나온 것일까, 3마리 모두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며 운동장에 들어왔다.
흐뭇한 광경이지만 오늘은 저들은 매우 귀찮은 존재다.
츙츙은 다리가 짧고 배를 땅바닥에 문지르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모처럼 그려놓은 흰 선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나 "안녕 츙츙, 미안하지만 오늘 산책은 안 하면 안 될까. 내일 있을 운동회 준비를 하고 있거든."
츙츙 가족에게 뛰어가서 설득을 시도한다.
츙츙 "츙츙은여자아이야츙!!여자아이니까산책은중요해츙!"
히나츙 "산책좋아칭!!여자아이의즐거움이야칭!"
피요츙 "삐-요삐-요!"
설득에 응하지 않으면 실력행사를 할 수밖에 없다.
여기는 초등학교니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냥 내보내는 것만로는 부족하다.
내가 없어지자마자 다시 침입할 거니까.
좌우간 산책할 의욕을 좌절시켜야 한다.
내일 운동회를 위해서……
운동회. 그렇다.
나는 용구실에 가서 시동 권총(준비 땅에서 발포 하는 공포탄 권총)을 가져와 화약을 장전했다.
이 소리를 가까이서 들려주면 깜짝 놀라서 달아날 것이다.
나는 살금살금 그들에게 다가가 산책 대열의 맨 뒤에서 아장아장 걷는 피요츙에서 30센치 정도 뒤까지 팔을 뻗고...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츙츙 "츙!"
히나츙 "치이잉!"
여동생 조류 "삐이이!"
새된 울음소리와 함께 맨 뒤의 피요츙이 벌렁 쓰러진다. 눈을 홉뜨고 부리에서 거품을 물고 있다.
츙(·8·)츙들이 피요츙에게 뛰어간다.
츙츙 "피요츙?피요츙?정신차려츙!!피요츙……눈떠츙……"
히나츙 "치~~잉!!치~~잉!!"
죽었다고 믿고 있는 히나(·8·)츙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츙(·8·)츙은 다부지게 피요(·8·)츙을 흔들면서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딸을 잃은 슬픔에 잠긴 모녀를 보니 죄책감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운동회 때문이다.
잠시 츙(·8·)츙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들이 전혀 나갈 기미가 없다.
나는 천천히 쭈그리고 징징대는 히나(·8·)츙의 등을 잡고 총구를 들이댄다. 부드러운 인형같은 감촉이 권총 너머로 전해진다.
나 "나는 아까 나가라고 말했었지? 그렇지만 너희는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피요츙을 죽였다. 아직 안 나오면 다음은 이놈을 죽인다. 나가면 이 녀석도 풀어 주겠다. 어떡할 거지?"
히나츙 "엄마츙구해줘칭! 칭! 칭!!"
나 "총구가 조금 따뜻하지? 이건 아까 죽인 너의 여동생의 피의 온기야……다음은 너의 피가 더 따뜻해져 버릴지도 몰라!"
히나츙 "츄~~웅!!죽기싫어칭!"
당연히 총구에는 피 한 방울 없을 것인데도 당황하고 있는 히나(·8·)츙은 애처로울 정도로 떨고 있다.
부자연스럽게 크게 움직이는 히나(·8·)츙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눈물을 글썽인, 시커먼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교원이다. 사람의 아이를 맡는, 아이를 돌보는 직책을 맡은 교원이 새라는 무방비한 생물에게 총을 들이대며 공포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다.
죄책감이 더욱 치밀어 오면서 나는 맞서기 힘든 본능을 느끼고 있었다.
교수로 일하면서 무의식중에 봉인한 근원적인 욕구.
가학심.
나 "어쩔거냐? 빨리 결정해라. 빨리 하지 않으면 그만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른다~~?"
히나(·8·)츙의 윗부리에 총구를 대고, 부리를 강제로 열었다. 날개를 파닥거리며 온몸을 비비꼬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나는 손아귀를 열지 않는다.
히나츙 "마 ゛~!마 ゛!!"
츙츙 "하지마츙!!얼른돌아갈게츙!!그러니까히나츙을내놔츙!"
츙(·8·)츙은 떨면서 나에게 분명히 의지를 전달한다.
자신도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을 텐데, 딸 때문에 필사적으로 용감하게 행동하는 츙(·8·)츙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동시에
울고 싶다.
탕
츙!
츙(·8·)츙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히나(·8·)츙의 옆머리를 발사했다.
짧은 비명과 함께 히나(·8·)츙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내 손바닥 안에서 끊긴 듯 탈진했다.
여전히 누워있는 피요(·8·)츙 옆에 히나(·8·)츙을 땅에 부드럽게 눕히지만 츙(·8·)츙은 요지부동이다.
나 "별수있나, 손이 미끄러졌다."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총연기를 츙(·8·)츙의 눈앞에 들이대니 겨우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츙츙 "히,히,히,히나츙!!! 히나츙!! 일어나츙!!대답해츙!……히나츙……히나츙……"
새끼들을 모두 잃자 마침내 츙(·8·)츙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꺼림칙함과 성취감이 겹쳐 복잡한 격정이 치민다.
나 "새끼들 일은 유감이야. 너라도 어서 돌아가라. 죽고 싶진 않겠지?"
츙츙 "츙……히나츙 피요츙……일어나지 않아츙……"
츙(·8·)츙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지만 츙(·8·)츙은 물러나지 않는다.
나 "……새끼들이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너도 갈래?"
츙츙 "츙……츙……"
츙(·8·)츙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자식사랑이다.
츙(·8·)츙에서 일단 권총을 떼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내리뜨고 고개를 숙이고, 온몸을 떨고 흐느꼈으나, 권총의 감각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불안한 듯 시선을 올린다. 나랑 눈이 마주친다.
그대로 몇 초 사이가 지나고.
탕
다시 츙(·8·)츙의 관자 놀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츙(·8·)츙은 나를 응시한 채 천천히 앞으로 거꾸러지듯 쓰러졌다.
기절한 츙(·8·)츙들을 버리려고 들자, 많은 깃털이 빠졌다.
특히 히나(·8·)츙은 볏 대부분이 빠지고, 리본으로 묶는 벼슬같은 털을 잃어버렸다.
죽지는 못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상당의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죄책감이 커진다.
그러나 엷은 색의 본성을 점차 노출시킨 츙(·8·)츙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나의 가학심이 다시 휘몰렸던 것도 사실이다.
나 "또 올게. 즐겁게 놀자."
뻗어있는 3마리에게 간단히 말하고 나서 공터에 버렸다.
※작중의 "나"는 기절했을 뿐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의 생사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